셔현(歙县)에서 툰시(屯溪)를 경유하여 이현(黟县)으로 점점 가다 보면 시디(西递)와 홍춘(宏村)에 관한 광고판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들어낸다. 완난(皖南)옛 촌의 대표적마을인 시디와 홍춘은 UN이 정한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평범하지만 초라하지 않은 서재가 있고 정원 가득히 곧고 바른 대나무가 있는 옛 주택에서 사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나의 꿈이었다. 시디와 홍춘은 나의 꿈을 실현 시켜주는 그런 곳이었다.
멀리서 바라본 시디
시디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 나는 이현에서 시디로 가는 차에 올랐다.
“구름 깊은 곳에 푸른 산이 있고, 좌우로 시냇물이 흐르며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있는 이곳, 무릉도원 중에 무릉도원이로구나!” 라고 차오원즈(曹文埴: 청나라 고종시대 때 상서(尚书)를 담당했던 셔현 사람)는 시디를 묘사했다. 이 때로부터 2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시디는 차오원즈가 묘사한 그때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시디 수루(绣楼)
시디 마을 입구에는 시디의 상징이자 대표적 건축물인 ‘츠싀파이로우(刺史牌楼)’가 세워져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비슷한 류의 건축물이 14개 정도 있었지만 대약진 운동(1958년부터 1960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전개한 대규모 수리시설 건설과 공업의 기본 건설 운동) 때 다 소멸되고 결국 ‘츠싀파이로우(刺史牌楼)’ 한 개만 남겨졌다.
시디는 크게 앞 강물과 뒷 강물로 나뉘는데 앞 강물은 시디 관광개발에 크게 기여한 곳으로써 앞 강물의 도로에서부터 골목이 사방으로 길게 뻗어있다. 비가 와서 그런지 관광객들이 그리 많지 않아 한가로웠고 보슬보슬 내리는 빗소리가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었다. 적적함이 흐르는 이 곳에 우산을 들고 지나가는 아리따운 아가씨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신선함과 부패함, 옛 것과 새로움의 대비를 그린 따이왕슈(戴望舒)의 <위샹(雨巷)>의 내용이 떠올랐다.
시디는 그리 큰 도시는 아니지만 각종 양식과 풍격의 건축물들이 많으며 가문이 있는 집, 부잣집, 보통 서민들이 사는 집에 상관없이 모든 집에는 석조와 목조가 있다. 또한 대문 양쪽에 붙여져 있는 ‘청백전가(清白传家),독서여지(读书励志)’라는 문구에서 짙게 남아있는 유교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앞 강물 중심에는 시디에서 가장 큰 사당인 후씨(胡氏)사당 “경애당(敬爱堂)”이 세워져 있다. 시디 사람들의 시조는 당나라 황실의 후손으로 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후산(胡三) 이라는 사람에게 맡겨진 뒤 성을 후씨로 바꾸었다. 경애당 옆에는 고대 시대 때 대갓집 규수들이 데릴사위를 얻기 위해 자수공을 던졌던 곳인 쫜지아로우(转角楼)라고 하는 아주 독특한 건축물이 하나 서있었다. 건물 위의 복도에는 메이런카오(美人靠)라는 난간이 길게 세워져 있었고 붉은 등들이 질서 있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으며 지붕 밑에는 ‘무릉도원의 집’ 이라고 써져 있는 액자가 걸려있는 동방 특색의 향기가 넘쳐나는 그런 곳이었다.
홍춘: 그림 속의 향촌
푸른 산과 푸른 물에 둘러싸여 있는 홍춘은 조그만 섬 같다. 먼 곳에서 홍춘을 바라보면 난(南) 호수 가운데에 있는 도로와 작은 다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리안(李安)감독의 영화 《워후장롱(卧虎藏龙)》에서 저우룬파(周润发:주윤발)가 말을 타고 이곳을 달린 장면이 있다. 홍춘에는 옛 저택과 성벽 등이 잘 보존되어 있고 시적인 정취와 그림과 같은 아름다움을 모두 다 갖추고 있어 ‘천연 영상 세트장’ 이라고도 불린다.
마을 입구의 난호수와 마을 중간에 있는 위에(月) 저수지는 각각 소의 배와 위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집 하나하나를 거쳐 흐르고 있는 인공 도랑은 소의 장을 본따 만들어졌다. 비록 인공작품이지만 이 같은 소의 형상은 홍춘을 새롭게 단장시켜줬을 뿐만 아니라 ‘그림 속의 향촌’이라는 이름을 얻게 해주었다. 또한 홍춘 주민들의 생활 용수에 관한 많은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었다.
나와 같은 세대들은 어렸을 때 살던 집에 대한 추억들을 다 한가지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아파트나 빌라처럼 편안하거나 편리하지는 못했지만 풋풋하고 정겨운 모습으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홍춘에 오면 어렸을 때 살던 집을 추억할 수 있어서 좋다. 흰 벽과 푸른 기와들과 물가에 떠있는 정자…… 비록 옛날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지만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들이 나의 마음을 흔들고 도취되게 한다.
“청즈탕(承志堂)”은 홍춘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방들이 굉장히 많이 있다. 마작을 둘 수 있는 방인 “파이샨거(排山阁)”와 흡연방인 “툰윤거(吞云阁)” 등 휴식공간과 오락시설 등이 모두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장식품과 목조품들도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때문에 이곳은 ‘민간고궁’이라는 칭함을 얻게 되었다. 청나라 말기 때 홍춘에 한 부자는 비록 부자였지만 상인이라는 이유로 지위가 매우 낮았고 이같은 상황은 그에게 항상 큰 아픔이었다. 상업으로 돈을 많이 번 그는 거대한 집을 지음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였고 이것이 바로 청즈탕이다.
수런탕(树人堂)에 들어가 감상 할 때 집주인인 왕썬챵(汪森强)씨는 “이 집은 오래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시간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거쳐갔고 그 분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입니다”라고 말했다. 홍춘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 곳에서 사신 왕썬챵씨는 자녀들을 도시로 떠나 보내고 자신은 홀로 집을 지키며 조용한 생활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새 옷은 여러 번 입어야 비로소 내 몸에 맞는 옷이 되는 것처럼 집도 오래 살아야 비로소 내 집이 되는 것이다”며 왕썬챵씨는 자신의 진정한 집은 오직 홍춘의 이곳뿐이라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웃어른들의 모습 속에서 그 분들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었고 진심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홍춘을 이곳 저곳 다니며 매 순간순간 그 분들의 순수함과 세심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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